작성일 : 13-07-14 22:56
[수필] 독일의 저력
 글쓴이 : dentalnews (123.♡.11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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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독일의 저력-박용호 

독일의 저력

 아름다운 프라하를 뒤로하고 우리는 베이스캠프인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오는 길목에 뢰텐부르크라는 성곽도시를 관광했는데 벤츠 ․ BMW ․ 아우디가 흔하니 흔한 곳에 중세도시가 그대로 보전되어있는 현실이 감동 그 자체였고, 그런 도시를 배경삼아 백발이 성성한 어른들이 삼삼오오 이젤을 펼쳐놓고 수채물감을 수놓는 모습에서 각박한  우리네 삶도 여유있고 아름답게 나이가 들 수 있다는 소중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쉬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오는 차안에서는 내일부터 직접 렌트카를 빌려서 운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막막하기만 해서 그랬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동부유럽의 가이드를 해주셨던 목사님께서 렌트카를 빌리는 모든일들을 처리해주셨기 때문에 수고스러움(?)을 덜수 있었지만 앞으로 즐거워야만 할 여행이 시험보기전날의 수험생처럼 초조하고 회피하고 싶던 까닭은 이 여행에서 책임져야 할 짐이 너무도 무거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전 처음 타보는 벤츠(A class)를 빌려 첫 경유지로서 라인강변을 따라 전설의 로렐라이 언덕으로 향하였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리 예습해두었던 도로공부도 지도책에 표시되지 않은 지명이 나오면 이리저리 좌충우돌 빙빙 헤메기 일쑤였고 가족을 책임지고, 오늘 계획한 곳에 도착하여 숙박을 하기 전까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여하튼 이리저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나치고, 잠시 들러보는 독일의 라인강변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깨끗하고, 너무나 자연과 인간이 잘 조화된,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너무도 얄미울 정도로 잘 살아서(자연과 친화적인) 부럽다 못해 심통이 날 지경이었고, 데리고 간 아이들에게 “우리나라도 이렇게 잘 살려면 너희들이 우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환경과 여럿의 공익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 는 훈계(?)가 자연발생적으로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반복적으로 나오곤 하였으니까!
 우리네 한강주변을 보면 그저 콘크리트 건물, 도로, 방벽 외에 이제 갓 심어놓은 키작은 나무들만이 썰렁하게 보이지만, 라인강 주변은 풍부하고 맑은 물에 이리보고 저리봐도 울창한 숲이 끝없이 이어지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마을들은 평지는 농사짓는 땅으로 이용하고 “어떻게 저런곳에 집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하는 깎아지는 절벽에는 집들을 올려지어서 자연과 친화적이고, 자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슬기로운 지혜를 보여주었고, 이는 보는이의 상식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원래 라인강변은 처음부터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가로서 자국을 부흥시키기 위한 소위 ‘라인강의 기적’은 공해와 환경오염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데, 이들은 그것을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하나씩 둘씩 개선하고 고쳐 나온 것이 현재의 모습을 이룬것이고 이는 또 다른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릴만 하다.
라인강을 지나 모젤강을 경유하면서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 근처에 있는 ‘트리어’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손수 렌트카를 운전하여  식은땀을 흘리며 낑낑거리고 달려온 첫 숙박지 까지의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몇 가지만 소개하면, 로렐라이 언덕 위 레스토랑에서의 일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은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었고, 그나마 기다려서 차지한 테이블에서의 메뉴표는 전혀 내용을 알길 없는 글들로 되어있어서, 하다못해 짧은영어로 웨이터에게 음식종류를 물어보는데 발음이 시원찮아서 그런지 잘 알아듣질 못해 결국은 닭요리 주문 시 ‘꼬꼬댁 꼬꼬‘ 라는 의성어를 섞어야만 주문을 할 수 있었던 웃지못할 일이 있었고, 호텔 안에서는 독일음식이 잘 맞지 않는 아이들에게 컵라면과 김치, 햇반을 차려준 후, 나중에라도 고약한 냄새의 음식을 방안에서 먹는 예의 없는 동양인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남은 음식을 흔적도 없이 깨끗이 치우고 환기시킨다고 법석을 떤 일도 있었다.
 또 하나, 밤 10시 정도 되어서 겨우겨우 구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수소문 끝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자그레브‘ 라는 식당을 찾아가니 영업시간이 끝났는데도 (주방장이 퇴근했슴) 기꺼이 손수 요리하여 낯선 동양의 이국인에게 친절을 베푼 크로아티아 출신의 식당주인 외 따뜻한 마음과 온화한 미소는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어쨌든 숙소정하고 배 채웠으니, 이제부터 해야 할 또 남은 일은 도시 내 24시간편의점을 찾아서 (보통 주유소와 같이있다.)일행들 먹일 물과 간식거리를 사야하고, 자동차에 기름 넣고, 내일 도착할 파리의 숙박지 예약확인한 후, 식구들 곤하게 자는 새벽녘까지 꼬박 지나가야 할 길과 지명을 지도책 펼쳐놓고 2-3시간씩 씨름하며 나만의 가이드 족보를 만들어야 하는, 도저히 피할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반복되는 막중한 책임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