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14 22:38
[자료] 유양석
 글쓴이 : dentalnews (123.♡.11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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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양석원장 

자료-유양석원장
한국 치과임플란트 창시자로 유명
나눔과 베풂의 봉사정신 실천 강조


"치과의사 윤리선언의 첫 구절에 나오는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눔과 베풂의 정신으로 실추되기 쉬운 치과의사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는 17일 치협 총회에서 대상(공로상)을 받게되는 유양석 원장이 치과의사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 종로구에서 상당히 오래 사셨다고 알려졌는데 어느 정도나 되셨는지요.
태어난 곳은 경기도 용인이지만 초등학교는 교동, 고등중학교는 경복, 대학은 서울치대, 직장도 서울여의대, 군생활도 경복궁 건너에 있던 수도육군병원이었고 개원도 통의동에서 하고 있으니 현재 77세로 70년 가까이인 일생의 대부분을 종로통에서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로구에서 자라 현재 종로구 통의동에서 개원하고 있어 종로구와 인연이 깊다고 보겠습니다. 고려의대 전신인 서울여자의대에 근무하던 중 6.25한국전쟁으로 군에 입대, 전방과 후방을 오가며 17년동안 군생활을 했습니다. 더욱이 54년 치의장교로서는 최초로 도미교육을 받아 미국육군의 치무업무에 관한 제도를 도입, 한국군 치무병과 발전에 기틀을 마련했지요.

- 군생활을 하면서 치무병과의 발전에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시키고 당시에 누가 근무했는지요.
군생활을 하면서 치과분야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특히 군 교육에 앞장서 대학보다 먼저 인턴 레지던트 교육을 실시했지요. 그리고 제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군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치과부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도육군병원 근무시절에는 치과장비의 현대화와 시설확장, 교육훈련 강화, 기술향상과 학술의 발전을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했지요. 펜이나 캐비넷 등 행정시설보다 핸드피스나 최신형 유니트체어 등 치과관련 장비들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해 아늑한 진료실을 꾸미는데 노력을 많이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원수도 모시게 됐고 국무총리도 찾아와 진료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치과군의관이 교육생까지 합쳐 25명의 대식구가 되었고 우수한 인재가 모여 치대학장 교수 분과학회장 치과의사회장 등 걸출한 인물이 많이 배출됐습니다.
더욱이 박정희대통령 주치의로 대통령이 치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도록해서 정부시책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했습니다.

- 한국 최초의 치과임플란트 선구자가 되기까지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임플란트에 대한 발상을 하셨는지요.
67년 아태치과회의에서 '프라스틱 임플란트'를 내용으로한 논문을 발표, 한국 치과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습니다. 더구나 치아의 화학적인 성분 분석 등 다양한 연구 아이템을 수시로 임상에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임플란트에 대한 연구는 58년쯤 독자적으로 추진했는데 당시 전상환자 진료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발치 즉시 뿌리를 플라스틱으로 이식하면 통증이나 염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치과임플란트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학회 발표는 부산에서 근무할 때였고 76년도에는 대한치과이식학회의 산파역을 맡아 초대 학회장이 되면서 치과임플란트의 창시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단독 학회만으로는 큰 발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재학회도 만들어 3~5대에 걸쳐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63년 수도육군병원에서 치과부장인 대령으로 근무할 때는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치과분야의 연구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를 도와준 치과의사로는 김명국 조영필 민병일 박기철 이상철 이의웅 이상래씨 등이 떠오릅니다. 그러한 노력이 요즘에 와서 하나둘 결실을 맺는 것 같아 홀로 대견스럽게 여기면서 당시 도와준 후배들의 노력에 대해 나름대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치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7년 동안 군복무를 하면서 나름대로 치과분야의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로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의사들이 예과 2년을 포함해 6년동안 교육을 받고 중위로 임관할 때 치과의사들은 교육기간이 4년이어서 소위로 임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치과대학 교육과정에서도 예과 2년을 교육기간에 추가시켜야 한다고 주장, 이를 관철시켜 치과대학 졸업생들도 중위 임관이 계속되도록 했습니다.
이밖에 구강내과 전문의 제도의 도입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치과의사들이 행정분야에 진출, 공무원 생활을 하는데 치협단체 등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또한 치과의사의 업무를 도와줄 치과기공사를 양성하기 위해 기술병과 하사관제도를 도입, 수많은 치과기공사를 교육시켰습니다. 물론 이들이 나중에 치과기공사의 발전에 나름대로 많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유원장과 흘러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가뜩이나 짧은 해가 금방 저문다. 젊은이와 지내야 젊어질 수 있다는 유원장은 경복고동문 치과의사회에서 30년동안이나 회장을 맡아 매달 모임을 주선하면서 젊음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아무튼 거듭 강조하는 치과의사로서의 봉사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군대와 사회봉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종친회 발전에 기여하면서 삶의 매듭을 맺을 것이라고 밝힌다.  <박종운기자 chihak@lycos.co.kr>



[연보]
▷27년 4월23일 경기도 용인 출생 ▷45년 3월 경복공립중 20회 졸업 ▷49년 7월 서울치대 3회졸업 ▷49년 8월 서울여의대 치과교실 근무 ▷52년 1월 육군 중위 임관 ▷52년 4월 보병 8사단 치과반장 ▷55년 10월 제2군사령부 치무계장 ▷58년 9월 제5육군병원 치과부장 ▷62년 12월 부산치과의사회 부회장 ▷63년 7월 수도육군병원 치과부장 ▷64년 10월 치협 감사 ▷66년 2월 서울대 의학박사 ▷67년 대령진급 ▷68년 12월 보국훈장 삼일장 수훈 예편 ▷69년 9월 기재학회 회장(3대) ▷76년 대한치과이식(임플란트)학회 초대회장 ▷80년 3월 치협 부회장 ▷87년 구강보건협회 부회장 ▷83년 5월 서울치대 동창회 부회장 ▷90년 7월 서울종로라이온스 클럽 회장(26대)

사진-미국 치과고등군사반(DAC) 외국장교 수료식(1961년 5월5일)에서 앞줄 오른쪽 두번째가 유양석소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