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9-21 23:13
차한잔-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방사선학교실 박태원교수
 글쓴이 : dentalnews (58.♡.88.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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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방사선학교실 박태원교수 

차한잔-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방사선학교실 박태원교수
디지털화로 과학기술 발전혜택 최대 수혜누리는 방사선과
필름없어지고 인터넷 활용하는 변화의 중심지의 산역사
구강악안면방사선학 교과서 세계의 표본으로 만들터


올해 서울대치과병원에서는 5명의 교수가 정년퇴임을 맞는다. 모두가 한국의 치의학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하지만 세월은 막을 수 없는 것. 아직도 못다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후학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하는 아쉬움을 표현하기 어렵다. 구강악안면방사선학교실의 경우는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보겠다.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디지털화되어 과학기술의 발전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다고 볼 수 있다. 박태원교수를 만나 산역사를 듣는다.

△방사선학을 전공하게된 계기라도 있으면 한말씀.
60년대인 3학년 시절에 치과방사선과 안형규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돕다가 인연이 되어 졸업후 방사선과에 들어왔습니다. 63년도에 분과학회로 자리잡으면서 65년까지 전공의 수련도 받았습니다. 특히 65년부터 68년 사이에 해군 군의관으로 일할 때 월남전에 참전,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1년동안 근무하기도 한 기억이 새롭네요.
68년5월에 제대해서 69년6월1일 서울대 유급조교로 근무했습니다. 치과를 전공하게된 동기는 경복고등학교 시절에 담임이 권유해서 들어오게 됐지만 후회는 없이 멋진 젊음을 바친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은행자리인 소공동 시절에는 구내와 구외에 방사선 기계가 각 1대씩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교수님, 방사선기사, 전공의인 저랑 3명이 근무했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특히 방사선과 분야는 발전속도가 의학분야중 가장 빨랐습니다. 따라서 개척해야할 영역이 너무 많아 모두가 힘들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2시까지 귀가한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69년 유급조교로 발령을 받아 병원 교실작업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임 5명 기사 10명 레지던트는 3년차까지 각 2명씩 6명과 보조인력 4명 등 25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래교수 12명이 병원 일손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그러니까 94년도에 서울에서 세계구강악안면방사선과학회(회장 유동수 서울대교수)가 열렸는데 20여개국에서 4백여명이 참석해 성공적인 대회를 치렀습니다. 당시에는 남북한이 전쟁에 대한 불안으로 서울대회 개최가 유동적이었는데 다행히 잘됐습니다. 그리고 아시아구강악안면학회장 시절이던 97년에도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 등이 참가하는 서울대회가 열렸는데 성공적이었습니다.
또한 10여년동안 동료들과 합심해서 교과서 편찬사업을 전개했는데 현재 4판 교정작업중입니다. 구강악안면방사선학은 영어 일어 독일어로된 교과서보다 월등하게 잘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교과서로 만들기위해 정년후에도 교과서 편찬작업에 매달릴 것입니다. 한국 일본 스웨덴은 미국이나 구라파보다 방사선분야가 앞서있습니다. 특히 미국교수들은 한국의 팩스시스템을 보고 역시 IT강국이 다르다며 부러워합니다. 필름없는 치과병원은 전세계적으로 5곳도 안됩니다.
그동안 장단기 해외연수로 일본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세계 각국을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학문을 도입하는데 힘썼습니다. 특히 85년 스웨덴서 악관절조영촬영술을 배워 국내에서 최초로 시행했는데 2년전까지 활용했습니다.
분과학회지도 1년에 4번 펴냈는데 한국의학학술지평가회에서 최우수 학회지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일반방사선학과 치의학방사선학의 다른 점은 구강악안면과 치아를 주로 다룬다는 점이 다릅니다. 치의학은 진단위주입니다. 치료방사선학은 치과에서 아직 없는 실정입니다.

△퇴임후 하실 일에 대한 계획은.
퇴임후 여건이 마련된다면 구강악안면방사선분야의 역사를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또한 교과서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할 방침입니다. 우리의 좋은 교과서를 영문화시켜 세계 시장에도 내놓을 것입니다.
남에게 모나지 않게 살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는 아니지만 중고교시절부터 교회에 다녀 지금은 장로가 되어 신앙적인 삶으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방사선촬영의 디지털화는 컴퓨터 대형모니터의 고해상도를 이용해서 촬영후 바로 보고 진단할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고 편리해졌습니다.
앞으로는 전세계에서 환자의 정보를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활영한 것을 한국에서 판독하는 준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방사선과팀 교실출신들이 주축이돼 영상교환준비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작은 벤처를 만들어 실시간 원격 판독시스템을 활용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마지막 강의를 하신 소감은.
8월말 정년을 앞두고 지난 6월3일 마지막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젊은 그대들과 함께 있어서 무엇보다 행복했다”면서 교직생활에 몸이 아파 결근한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신앙생활을 다행으로 여기며 믿음 의지로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강의했다고 소개한다.
<박종운기자 idgoodid@naver.com>




[연보]
▷39년5월15일 충북 제천생 ▷62년2월 서울치대졸업 ▷64년2월 서울대 치의학석사 ▷65년3월 서울치대병원 전공의수료 ▷67년2월 서울치대 시간강사 ▷68년5월 해군 군의관 대위 예편 ▷69년6월 서울치대 조교 ▷70년5월 서울치대 전임강사 ▷73년2월 서울대 의학박사 ▷74년1월 서울치대 조교수 ▷75년6월~77년5월 서울치대 학장보 ▷78년7~82년8월, 86년7월~98년7월 서울대병원 치과방사선과장 ▷79년9월 미국 미네소타치대 객원교수 ▷78년1월 서울치대 부교수 ▷83년4월 서울치대 교수 ▷84년4월~88년4월 대한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회장 ▷85년6월 스웨덴 룬드대 객원교수 ▷88년6월 미국 텍사스 산안토니오대 객원교수 ▷96년6월~98년6월 아시아구강악안면방사선학회 회장 ▷99년1월~01년2월 서울치대 치의학교육연수원장 ▷01년11월~현재 한국기독치과의사회 회장 ▷02년4월 치협 학술대상 수상 ▷03년5월 브라질 산타카타리나대 객원교수 ▷이메일 raypar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