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8-15 23:33
[수필] 파리와 우물 안 개구리-박용호원장
 글쓴이 : dentalnews (123.♡.11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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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파리와 우물 안 개구리-박용호원장 

                파리와 우물 안 개구리


파리를 향하여 일찍부터 서둘러 국경에 도착했다. 동부유럽을 제외하곤 국경에서 특별한 검사는 하지 않는다. 대신 그나라를 통행하려면 ‘비그네트’라는 통행권을 휴게소에서 미리 사둬야 하는데 프랑스만은 우리나라처럼 톨게이트에서 직접 요금을 내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파리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변은 낮은 구릉지대이거나 거의가 평원으로 저멀리 지평선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추수시기 무렵이라 그런지 농경지는 풍년들어 넉넉한 우리네 가을 밭
풍경을 수십배 확대시켜 놓은듯한 광활함을 보여주었다.
노틀담사원 근처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찾아가기 위해 전 세계 도시중에서도 운전하기 어렵다는 파리시내를 겁도 없이 들어서자 그 유명한 세느강이 왼쪽에서 반겨주었고 예상한 이미지와는 달리 시내도로가 너무 좁고 미로같은 일방통행로가 너무 많아(왜냐하면 이들은 문화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유지한다고 함) 빌려온 휴대폰의 도움이 없었으면 눈앞이 깜깜했을 터였다.(동유럽 여행시 가이드를 해주셨던 목사님이 빌려줌.)
우여곡절 끝에 민박집 주인을 만나 숙소에 도착하니 좌,우로 아름다운 세느강이 흘러 전망은 좋았지만 주차공간이 없어, 짐을 옮기기 위해 잠시 정차한 순간에도“주차위반딱지”가 떡하니 앞유리에 붙어있는 것을 접하니 고생고생하며 찾아온 이방인의 눈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파리의 첫인상이었다.
잠시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짐을 풀자마자 시내관광을 위해 투어버스에 올라 첫 경유지인 노틀담 사원을 지나 퐁네프다리를 건너 콩코드 광장을 보고, 샹제리제 거리에 하차하였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라는 샹제리제 거리는 넓은 도로와 유명상품의 간판이 그를 입증해 주었고, 자유분방한 거리와 세련된 복장의 남녀는 활기차 보였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며 개선문위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정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정방사선형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도시의 모습은 무질서한 듯이 보이는 프랑스사람들의 철저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TV와 책으로만 자주 접했었던 에펠탑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처음 봤을 때처럼 낯설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는 그 규모와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하였고, 그 수많은 철 구조물을 엮은 공법이 인체의 골격구조에서 힌트를 얻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또 한번 인체의 신비로움에 경외스런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파리지하철을 이리저리 갈아타며 도착한 세느강 유람선에는 동양인 단체관광객(주로 중국인)이 주를 이루었고, 야간 조명아래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은 먼 여행에서의 고단함을 느끼지 못하게 했으며 특히 레이저광선을 받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심야의 에펠탑은 캠코더를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피곤한 몸을 먼 이국땅의 민박집(현대식 건축물이 아님)에 누워 창밖 파리의 밤하늘을 바라보다 어느덧 눈을 떠보니 굿모닝!  부리나케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오늘의 첫 목적지인 루브르 박물관을 향하였다.
타국의 문화유산 보물창고로 제국주위의 상징으로만 느껴졌던 루브르는 어쩌면 그렇게도 세계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보관하고 가꾸어 왔는지 “과연 우리에게 있었으면 이렇게 간직할 수 있었을까?” 하는 근대 열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본 박물관에서 한국관 모습은, 어느 서점에서도 한국어로 된 여행안내책자나 한국을 소개하는 외국어 여행책자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일부러 서점을 찾아다녀봄) 우리네 위치를 또 한번 루브르에서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국력의 모자람에 우물 안 개구리의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에 국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마리 앙뜨와네뜨의 베르사이유 궁전은, 궁전의 화려함은 둘째치고,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그 사치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정원은 노역과 세금으로 핍박에 몰아넣은 시민들에게 혁명의 꺼리를 충분히 제공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떼기 싫은 발걸음을 옮겨야하는 어려움(?)덕에 예정된 시작보다 늦게 파리를 떠나 다음 예정지인 유로파크를 향하면서 파리는 짧은 시간에 겉모습만 보고 떠나는, 잠깐 들렸다 가는 도시가 아니라 진정으로 문화, 역사, 도시의 깊이를 접해야 하는 도시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느끼며 미안함과 아쉬움이 교차됨을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