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29 08:03
[수필] 소중한 문화유산-
 글쓴이 : dentalnews (123.♡.11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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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중한 문화유산- 

                소중한 문화유산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고 싶으면 ‘여행을 보내라’는 말도 있고, ‘사랑할 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여행을 가라’는 책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스스로 성숙하길 원하고,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진실로 바라는 이라면 여행이 그것도 고생스런 여행은 기대한 이상의 무언가를 남겨놓는다고 느끼고 있다.
어제 저녁 아들 두 놈과 함께 찜질방에 다녀오며 나눈 대화 중에 작은아이가 “아빠, 나 요즘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요. 4학년이 되고나니까 숙제가 너무 많아지고 학원을 많이 다녀서 도저히 쉴 시간이 없어요. 건강하려면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하는데 전 도저히 시간이 없어요.” 라고 한다.
도대체가 치과의사로서 한사람의 지역사회 일원으로써 성실성과 올바른 시민의식이라는 미명하에 바빴던 생활이 가장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지금 얼마나 힘들지도 모르고. 또한 아이들 교육에 달리 무언가를 추구해야 한다면 부슨 대통령 탄핵 같은 특단의 결정이 필요한 것 같은 이 나라 교육제도와 사회 환경이 지극히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극단을 피하면서, 어려웠던 우리 어린시절의 과거를 교훈삼아 우리가족, 우리아이들에게 건강한사고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등을 꼭 가르쳐주고 싶기 때문에 항상 ‘왜?’라는 생각과 “여행”이라는 틀을 빌리려 애쓰고 있다. 많은 곳을 여행해 보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지인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개인적인 성격 탓인지 부부 또는 가족만으로 한정해서 다니는 것이 여행의 무게감을 무섭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하는 듯싶다. 왜냐면 여러 여행의 의미 중 낯설고 물설은 이국에서의 가족만의 여행은 부모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각자 구성원끼리는 서로의 연대감을 자연스럽게 공고히 할 수 있으며, 혈연 공동체로서 여행에서 느끼는 여러 의미를 바로 바로 대화, 전달, 그리고 공동 이해 할 수 있는 묘한 동질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하여 본인은 2년에서 3년짜리 적극을 들어 그 적금을 타는 때를 여행의 시기로 삼고, 적금 가입시기에 여행의 목적지, 기간, 의미 등을 부여하여 불입액수를 결정하곤 한다.
2003년도 가을 가족여행도 바로 위의 계획에 입거하여 3년 전에 유럽여행을 목표로 적금을 들었던 결과물이다.
막상 시기가 다가와서 구체적으로 여행일정을 잡으려고 따져보니 여간 문제가 복잡한 것이 아니었고, 여기저기 미리 유렵여행경험이 있는 아는 지인들과의 대화나 인터넷을 통한 유럽지역 여행정보 그리고 여행책자나 여행사을 통해 어떤 방식의 여행을 할 것인지의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더군다나 IMF 이후로 안좋다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번여행이 특권을 지닌자의 놀음으로까지 느껴졌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의미를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평소 빡빡한 임상생활과 진료 후 여러 모임 때문에 주요 여행지와 경로들을 아내가 계획했는데 퇴근 후 귀가해서는 여행의 관점과 의미 차이로 인한 여행 목적지의 이견 때문에 본의 아닌 실갱이도 했었으나 결국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여 프랑크푸르트를 거점으로 동 ,서, 남 방향으로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초등학생 3면 및 총 5명분의 무거운 여행짐과 예정여행일정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아직 문화적 체험이 낯설고 자본주의에 절 익숙하다고 판단한 동부유럽은 렌트카와 현지 가이드를 이용하고, 나머지 중, 서부유럽은 자가운전하면서 여행하기로 그 방법을 결정하니 큰 스케줄은 정리된 셈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현지 한국인여행사와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며 9월 중순까지는 각종 박람회 때문에 그곳의 사정이 복잡하다는 얘기를 듣고, 9월 25일부터 10월 11일 l까지도 여행날짜를 정할 수 있었다.
우선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여 비행기표를 구입하였고, 도착첫날 숙소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로 예약했다.
이러저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조그만 일 하나를 생각에서 행동으로 옮기는게 생각보다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고맙게도 프랑크푸르트 현지여행사 사장님께서 공항까지 직접 마중나와 주셨다.
기본적인 인사말이외에 특별한 외국어 특히, 영어 과외한번 받지 않은 나에게는 언어소통이란 막막한 두려움 앞에 첫 단추부터 친절한 분들의 도움이 몇백달러의 돈보다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척 친절하였던 그분은 숙소까지 오는 짧은 시간에도 독일인의 국민성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특히 동행한 우리아이들에겐 “독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고 느끼는 어린 아이들로부터 식사예절 및 공중도덕에 관해 굉장히 엄격하다”라고 말씀하셨고 “한국 사람임을 부끄럽지 않게 해 달라”며 정중히 부탁하셨다. 또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의 울창한 숲에 대해서는 “독일 사람들은 아무 일 안하고 나무만 팔아도 30년을 살수 있는데, 독일도시가 2차 세계대전 후 모두 파되 되어 복구과정에 힘을 쏟는 동안, 지나치게 도시가 콘크리트 화 되는 것을 느끼고 그 후 자연치화적인 정책을 추진한 결과로서 지금 유럽 내에서도 으뜸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은 “고국을 떠나계신 한국인들은 모두 고국을 한시라도 걱정하는 애국자이구나.”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주는 경우였다.
다음날 현지 가이드를 만나 우선 바이애른 공화국 의 수도였던 뮌헨으로 향하여“ BMW박물관”, 뮌gps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october beer festival" Olympic Stadium등 이국적 풍경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그날 저녁 무렵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교외의 아름다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감동적이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등장했던 짤츠부르크는 모차르트 시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도시가 예술적이고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특히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점들의 간판이 건물을 채우고 , 자기만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우리시각으로 보기엔 우려스러울 정도로 작고 아름다웠던 기억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주요 여행자의 첫 경유지로써 , 짤츠부르크는 현대적 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다고 현지인들의 모습이 전통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 꾸며낸 것은 아닐진데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이곳에 묻혀 살았으면 하는 바램일정도로 강한 인상을 준 곳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에 도착해서 근세까지 중부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본 모습을 보는 순간 이것이 살아있는 중세의 유럽역사이구나 하는 느낌을 절실히 느끼며 마차나 버스, 전차가 동시공존 할 수 있는 여유가 현대에서도 중세의 문화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현대 교육을 받은 동양인으로서 문화의식의 열등감을 처절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첫 번째 도시였다고 고백한다.
비엔나커피는 있지도 않은 비엔나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한잔한 후 헝가리의 괴르 부다페스트, 슬로바키아를 지닌 체코의 프리하로 향했다.
헝가르의 소박한 시골도시인 괴르에서의 첫여행지 local beer의 맛과 그 인심, 부다페스트의 경관도 더없이 좋았고 슬로바키아와 이데올로기 공황 탓인 듯한 경직되고 가난함 모습은 비엔나 프라하와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접기로 하자.
도착해서 접하는 곳들은 “뭐 이런게 다있노!!!” 라는 찬탄사가 저절로 붙어도 모자라는 아름다운 도시들이었고 반도의 반쪽, 그것도 아직도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본인에게는 문화적, 역사적 차이라고 설명해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찬란하여, 가슴 벅차도록 선도들의 유산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온 그네들이 정말 ‘우리와는 근본이 다른 족속인가?‘ 라는 의문은 들게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라면 동부유럽은 그저 우리의 시골풍경 만큼이나 목가적이고 전원적 풍경을 기대했을 것인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전도시가 보존된 정도이니 자연과 불친화적인 우리의 사각형 아파트와 고층 건물속에 사는 우리네 한민족은 안타깝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하였다(?)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라고들 한다. 신약성서를 위시한 기독교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유럽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를 수 없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생길 수 없슴을 뼈저리게 느꼈고, 반대로 세계사에 관심이 높았던 이유 덕에 그나마 한지에 물 빨아들이듯 많은 것을 이해하고 가슴 저리게 느꼈다. 부분들은 우리네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 필자가 고향이며 개원하고 있는 수원의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존된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나 다행스러우며,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